• 2024. 10. 9.

    by. 미술사

    서양미술사의 중세 미술은 로마의 몰락이 시작되면서 제국의 힘이 보다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시작됩니다. 유스티니아누스의 통치 아래, 비잔틴 제국은 스페인 일부, 페르시아, 북아프리카를 아우르는 거대한 영토를 확보하게 됩니다. 비잔틴 제국의 서쪽 수도는 이탈리아에 있었고, 이곳이 비잔틴 예술의 전달지로서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유럽 이교도들도 계속해서 개정이 가속화됩니다. 기독교는 전 제국을 아우르는 공식 종교가 되고, 빠르게 퍼져나가 신앙이 국가의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기독교적 건축물은 각 제국의 종교 예술로 변모하게 되는데, 건축물의 대부분은 장엄합니다.

     

    로마의 몰락과 중세 기독교 미술의 시작

    로마는 소고트족과 반달족에게 약탈 당하면서 몰락합니다. 이 이민족들은 훈족의 위협에 의해 서쪽으로 도망오면서 그곳에 위치한 로마를 위협하게 된 것입니다. 이 시기의 기독교 미술에서는 선한 목자로서의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모자이크로 남기기도 합니다. 작품 '갈라 플라치디아의 묘 - 선한 목자'는 그리스도가 양과 같은 동물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으로 이 주제를 사용한 정교한 모자이크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가장 마지막 버전 중의 하나이며, 이후에는 서방 교회 전체에서 동물숭배로 인지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이 주제를 금지하게 되며, 다시는 관련 주제의 작품을 볼 수 없게 됩니다.

     

    또, 이시에 작성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문서에 그려진 '베르길리우스의 초상화'는 인물을 투박하게 그렸고 로마 예술과 연관된 사실주의적인 요소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고정 전통과 결별을 보여줍니다.

     

    기독교 확산에 따른 중세 기독교 미술

    로마가 몰락하고 제국의 힘이 동지중해로 옮겨진 이 기간 동안, 기독교는 전 제국을 통틀어 공식적인 종교로 변모합니다. 유럽 이교도의 개종은 계속해서 가속화되면서 신앙이 빠르게 퍼져 가고 힘을 갖습니다. 더 나아가 국가 체계에 종교가 관여하게 되면서 더 강화됩니다.

     

    라벤나에 있는 신 비탈레 성당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그의 수행단'은 유스티니아누스와 그의 아내가 라벤나를 방문한 적이 없지만, 이 벽면 모자이크를 통해 정치적이고 영적인 권위를 강조하는 장엄한 작품을 제작하였습니다.

     

    로사노 복음서인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은 황제가 올 경우 사용하는 값비싼 자주색 염료를 사용한 양피지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고급 양피지에 금과 은으로 문자 써서 기록을 남겼습니다.

     

    시나이에 있는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 있는 '두 명의 성인과 함께 있는 옥좌 위의 성모 마리아' 라는 성화는 염료와 녹은 밀랍을 혼합하는 납화법으로 그려진 그림입니다. 납화벅은 제작 과정이 매우 길고 어렵지만, 성화가 오래 유지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여러 왕조와 민족의 발흥이 중세 기독교 미술에 미친 영향

    헤라클리우스 왕조가 득세하여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되지만, 이후 이슬람 교도의 군대가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고, 도서관을 파괴합니다. 이후, 아랍 세력의 힘이 약해지지만, 다른 종류의 위기가 발생하여 기독교 미술에 영향을 미치는데, 첫번째는 '성상 파괴 시기'와 두번째는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이 북유럽의 수도원을 약탈하는 위기'입니다. 이후, 카롤링거 르네상스, 오토 왕조 전성기, 앵글로색슨 예술 만개, 노르만족의 발흥 등의 역사적 시점을 포인트로 중세 기독교 예술은 점점 시대를 반영하는 미술로 자리잡게 됩니다.

    헤리클리우스 왕조는 이슬람교도의 군대가 중동 전역을 휩쓰는 상황에서 비잔틴 제국을 통치하게 됩니다. 동쪽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여 공격하는 때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서방에서는 기독교로 새로 개종한 사람들을 위한 선교 활동을 준비하는데 그래서 호화로운 복음서 책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린디스판 복음서'의 시작 페이지는 장식적인 캘리그래피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장식적인 목적 뿐만 아니라 성직자가 필요한 구절을 찾는데 도움을 주는 실용적인 목적도 수행합니다. 짐승과 새들이 어울려 있는 소용돌이 모양의 캘리그래피는 켈트족이 만든 금속 공예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후, 샤를 마뉴의 신성 로마 제국 통치하며 자신들이 고대 로마의 문화적 계승자라고 널리 알리기 위해 카롤링거 왕조의 소문자를 제국 전체의 표준어로 만들어 이 글로써 당위성을 알렸다. 그 후 세워진 오토 왕조의 경우, 앞선 카롤링거 왕조 예술보다 더 밝은 색채를 사용하고 배경을 심플하게 만들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앵글로샌슨족의 예술이 만계하면서 '윈체스터 학파'가 만들어지고 카롤링거 예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다양한 필사본이 제작되었습니다.

    또다른 종족인 노르만족은 용병으로 싸우다가 제 1차 십자군에 참가하면서 결국 안티오크에 노르만 공국을 세웁니다. 이렇게 한 곳에 자리잡아 공국을 세우기 전, 그들은 영국을 침공했으며, 이런 기록을 남기기 위해 태피스트리 방법으로 글과 그림으로 남깁니다.

    서양미술사의 중세 미술에 영향을 끼친 로마의 몰락, 기독교의 확산, 여러 왕조와 민족의 발흥 그리고 12세기 르네상스
    서양미술사의 기독교 확산

    12세기 르네상스 시기의 중세 기독교 미술

    12세기엔 서방의 정치적인 문제에까지 관여할 정도로 교회의 힘이 강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문화와 정신적인 부흥까지도 관리 감독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최초의 고딕 양식 징후가 나타나면서 건축이 더 웅장해지고, 그리스와 아랍 문서에 대한 번역이 늘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최초의 대학들로 인해 새로운 형식의 교육법이 탄생합니다.

    교회는 서방에서 더 역할이 커지게 되어 정치에도 영향을 미치며, 통치자와도 권력 싸움을 하게 됩니다. 또 문화 부응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이 무렵, 시토 수도회가 교회 개혁의 선봉에 서면서 최초의 고딕 양식이 나타납니다. 또한, 성인의 에피소드를 드러내는 작품과, 종교와 관련된 사람의 모습을 드러내는 작품이 나타나는데, '필경사 에드윈' 이라는 작품은 문서 작업을 하는 중세 수도사를 훌륭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